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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적 예술이 남긴 질문들(2) '포용'을 넘어: 왜 지금 한국에서 'Inclusive Arts'를 이야기해야 할까?

  • Writer: Soohye JANG
    Soohye JANG
  • Feb 10
  • 3 min read

본 글은 장수혜 박사논문 Multidimensional Impact of Inclusive Arts: On Creative Process, Audience Experience, and Organizational Change (포용적 예술의 다면적 영향: 창작과정, 관객경험, 조직변화를 중심으로)를 우리말로 요약 정리한 버전입니다.



'포용'을 넘어: 왜 지금 한국에서 'Inclusive Arts'를 이야기해야 할까?

  


양적 성장과 물음표: 우리는 어디로 노를 저어가나


기존 연구에서는 포용적 예술을 "장애 예술인과 비장애 예술인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과정과 관계를 형성하고, 현대예술의 실험과 언어 개발에 기여하며 예술적 수월성을 추구하는 실천"으로 정의합니다(박신의, 심규선, 주명진, 2018). 실제로 한국의 포용적 예술은 장애 예술의 맥락 안에서 급속도로 성장해 왔습니다. 2022년 장애예술인 지원법 시행 이후 장애 예술 예산은 2017년 대비 2025년 4배로 증가했고(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5),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의 접근성 개선(최보연, 정종은, 2024)은 물론 해외 우수 사례와의 교류도 활발해졌습니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7; 장수혜, 2024).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성취 이면에는 여전한 현실적 격차가 존재합니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 차이와 갈등, 예술교육 현장에서의 배제 (방귀희, 2023; 김원영, 2024), 용어와 개념의 혼란 (박신의 외, 2018; 방귀희, 2023), 그리고 최근 화두가 된 장애 예술가의 인정 문제 (이진아, 2022; 극단 무적의 무지개, 2026) 등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입니다. (논문에는 적지 못했지만 제가 글을 쓰는 현 시점 2026년 1월 2일, @invincible_rainbow 계정을 통해 최근 장애예술가 진준엽이 서울연극협회 신입회원 입회과정에서 겪은 차별에 대한 경위 공유 및 연명요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2020년 웹진 <연극in>은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장애 예술"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이러한 양면적 성장을 조명했습니다. 당시 문영민 장애 예술 연구자가 던진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 더 유효해 보입니다.

 

“장애 연극에 창작자로, 매개자로 혹은 관객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크고 작게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고, 변화를 환영하거나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 그렇다면 우리는 노를 저어 어디로 가야 할까? 아니, 우리는 계속 노를 저어야 할까?” (문영민, 2020)

 

급격한 정책 변화와 관심 속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우리가 쥐고 있는 '노'의 정체를,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점검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포용'의 진짜 의미를 알고 쓰고 있는 것일까요? 구호 너머 창작 현장에서 '함께 만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포용(Poyong)'의 함정과 'Inclusive Arts'의 재정의


본 연구는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포용(Poyong)'이라는 단어가 가진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한국어 '포용'은 '너그럽게 감싸주거나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자칫 위계적이고 시혜적인 뉘앙스를 풍길 수 있습니다 (김원영, 2025; 김미곤, 2019). 나아가 이러한 '포용' 담론은 장애 예술가에게 "비장애인만큼 잘해내야 한다"는 보편성 획득의 압력을 가하며, 장애를 극복해야 할 결함으로 구분 짓는 위험성을 내포합니다.

기획자 고주영은 2025년 이음매거진 좌담회에서 "정책도, 지원사업도 '왜' 하는지를 잊은 채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ESG, 포용, 인클루시브를 따라가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왜'가 빠진 정책적 방향은 예술가 간의 평등한 협업을 전제하는 포용적 예술의 본질과 충돌합니다.

연구를 진행하며 저 역시 한국어 '포용'이 주는 어감 때문에 차라리 영문 그대로 '인클루시브 아트(Inclusive Arts)'라고 표기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폭스와 맥퍼슨(Fox & Macpherson, 2015) 역시 영어권에서 'Inclusive'라는 용어가 형식적 포용주의(Tokenism)나 비장애인 중심의 시선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비판하면서도, 이 용어의 '전략적 유용성'을 옹호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완벽하게 포용적인 예술은 존재하지 않지만", 이 용어는 "기존 다수 집단의 운영 원칙과 관행을 식별"하고 "발달장애나 학습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실천을 명명하는 데" 여전히 유효합니다.

따라서 본 논문은 '포용적 예술'이라는 용어를 폐기하는 대신, 이를 비판적이고 살아있는 개념으로 다시 채택하고자 합니다. 이는 오스틴 등(Austin et al., 2015)이 제시한 정의와 같이, "장애 예술가를 작품의 중심에 두고, 그들의 목소리와 서사의 진정성을 추구하는 실천"으로서의 포용적 예술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받아들이는' 포용이 아니라, 기존의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미학을 만들어가는 치열한 과정으로서, 저는 이 단어를 다시 쓰려 합니다.




포용적예술의 다면적 영향: 창작과정, 관객경험, 조직변화


이 글은 연구자의 박사논문을 압축한 요약본 시리즈입니다. 창작과정의 미시정치, 관객조사 방법론, 조직변화 분석, 변화이론(Theory of Change) 모델의 실증적 적용 등 더 깊이 있는 내용은 논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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